본문 바로가기

세상사는이야기

[채식의 배신] 문제많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로운..



"먹기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인 사람은 그 생명이 속해 있던 공동체의 생존과 존엄성을 책임져야 한다. 나는 연어를 먹게 되면, 아니 연어를 먹을 때마다 그 연어와 그 무리가 서식하는 강이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맹세한다. 나무 한 그루를 벨 때마다 그 나무가 속한 공동체에 비슷한 맹세를 한다. 소고기를 먹거나 당근을 먹을 때마다 공장형 축산과 산업형 농업을 근절하겠다고 맹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채식의 배신 중 p 146. 리어키스 지음, 길희정 옮김. 펴낸곳 부키) 


요즘 읽고 있는 '문제 많은' 책이다. 여기서 문제라는 것은 아직도 이 책의 결론을 모르겠고,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지 않지만, 하여간 글을 풀어가는 일종의 팩트에 근거한 논지 자체는 흥미로운데, 서술이 정말 장황하다. 같은 논지의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같은 주장의 성명서 혹은 보도자료를 다른 근거자료를 인용하면서 계속 발표하는 듯 한 느낌이다. 


아마도 이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채식주의에 대한 비분강개하면서 글을 써 나간 듯 하다. 자간 곳곳에서 저자의 분노가 느껴지는 듯 하다. 이는 아마도 20년 간 극단적(?) 채식을 하였던 저자가 '지구를 살린다고 믿었던 채식이 결국 지구를 망친다는 자기인식'에 근거하여 '채식에 대한 일반적 의견'에 대한 반론(?) 차원으로 쓴 글 이기 때문인 듯 하다. 


책의 내용은 간략히 살펴보면, 저자는 무려(?) 16살부터 육식에 대한 관점을 동물에 대한 고문과 환경파괴 행위로 연계하여 16살부터 채식을 결정하였고 그후 20년간 채식주의자로 살았지만, 결국 남은 것은 '극단적 채식으로 인한 지구환경 파괴와 건강상의 문제'만 남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 채식주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 속에서, 채식이 오히려 지구환경을 파괴한다는 나름의 근거 마련과 선순환적인 생명과 죽음이 자연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채식을 하였으나, 아무런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고 믿었던 농업이 오히려 더 큰 환경파괴를 하고 있다는, 오히려 더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자기고백을 한다. 


그리고 생명울 죽이지 않겠다는 도덕적 채식주의와 자본 논리에 휘둘리는 곡물시장의 정치경제적 구조에 대한 반대로 출발한 정치적 채식주의, 그리고 영양학적 채식주의 모두를 비판한다. 


사실 이 책을 접하고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극단적 채식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비판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주장되다보니, 논지 자체가 헷갈려진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내용들은 생태주의 입장을 떠나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물은 수도곡지를 틀어 받고, 동네 식료품 가게나 우리가 몸 담은 경제/사회 체제(문명)에서 얻은 음식만을 먹어 온 사람은 그 체제에 삶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가 먹는 음식과 마시는 물을 자기가 딛고 선 바로 그 땅에서 얻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음식을 먹으면서 땅과 맺은 약속을 결국 지킨다. 자기에게 음식과 물을 준 공동체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죽을때까지 그 공동체를 지킬 것이다."(p 103 중 인용) 


인디언 수(Sioux)족 출신 작가이자 배우인 루서 스탠딩 베어(Luther Standing Bear)의 "위대한 정령 와칸 탕카에게서 나온 거대한 통합의 기운은 모든 사물을 관통하며 흘렀다. 들판에 핀 꽃, 지나가는 바람, 바위, 나무, 새, 동물을 관통한 그 힘은 첫 번째 사람을 채운 그 숨결과 같은 기운다. 그러니 모든 만물은 서로 연결되었고..." 


혹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서로 다른 도 단어로 '생명을 표현했다. 바로 비오스(Bios)와 조에(Zoe)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다른 살아 있는 것의 죽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에 생명'은 계속되는 생명, 넓은 의미에서의 생명을 듯하는 단어로, '비오스 생명'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비오스 생명은 살아 있는 생물의 개별적인 생명을 의미한다. 조에는 비오스를 취한다.(죽이고 소비하고 먹고 희생하고 필요로 한다.) 수많은 영적 단체와 종교 전통의 세계관은 이 성인의 지식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 죽음은 특정 생명(비오스)의 끝이지만 생명 자체(조에)의 끝은 아니다. 조에 생명은 영원하고 죽음을 넘어선다."(p 130)


이러한 인용 외에도, 짐승을 죽이지 않고 상처만 입히는 것을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서, 상처난 짐승을 찾아 며칠을 헤매는 쪽을 선택하였다는 일부 문화에 대한 소개 이외에도 생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이책은 곳곳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흙에서의 희망 찾기, 자신의 삶의 주변 돌아보기, 문화의 변화, 의식의 변화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개인적 차원의 3가지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기, 자동차 이용 포기,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고르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앞서 이야기 하였지만, 일관되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서술 등으로 온란스럽다.  하지만 생명과 생명체 그 자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인용은 훌륭하고 많은 고민거리를 주고 있다. 저자가 내린 결론에 대한 수용 여부 혹은 자기 적용은 읽는 사람 각자의 판단이다. 


이 책의 결론은 우리 옛말을 인용하면 "내 몸에서 나오는 오줌똥 3년만 안먹으면 병들어 죽는다"는 한줄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