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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이야기

가도 가도 공사판인 서울을 떠나 통일로를 따라 몸을 뉘이며

<114일차(05.27) 사진 및 동영상 http://cafe.daum.net/dhcpxnwl >

- 가도 가도 공사판인 서울을 떠나 통일로를 따라 몸을 뉘이며 -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추모열기를 바라보며,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될까봐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는 가엾은 정치인이 있다 합니다. 그 넓디 넓은 서울 시청 광장이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되지 못한다 합니다. 상황 자체가 황망하기 짝이 없을 상황이지만, 참으로 듣기에도 보기에도 측은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광장의 마지막 꼬락서니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서울을 떠나며>
가도 가도 공사판이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마지막 기억을 되살려주려는 듯, 서울 순례 구간의 마지막 일정은 오전 내내 공사판을 따라 순례길을 지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전 일정 마지막 즈음에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에 다시 발을 딪었으며, 오후 순례부터 이제 임진각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순례가 되었습니다.


모두 부지런히 순례길을 준비하던 아침. 수경스님은 잰 걸음으로 여장을 풀었던 사찰을 한번 돌아봅니다. 나름대로 깊은 산속의 사찰인지라 산간 계곡 차가운 물에는 여전히 올챙이 가득하고, 이른 아침부터 산새소리 물소리 가득하여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고요한 산사의 차분함도 잠시, 하루 일정을 출발하는 지점에 도착하니 온통 공사판입니다. 도로 건너편에는 산 중턱에 포크레인 올라 부지런하게도 산을 깍고 있고, 순례단이 지나는 측면에는 신도시 건설현장만 있을 뿐입니다. 통일로 주변에는 구파발 역을 전후로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그 수려한 북한산 풍광도 여기서는 아파트 단지 건설현장의 배경이 될 뿐이더군요.

20년 전 분단의 아픔을 넘어 남과 북의 공존과 평화상생의 길을 위해 몸을 헌신하셨던 문규현 신부님은 감회가 새롭다 합니다. 더욱이 지금 시점에서 남과 북의 상황이 예전보다 더 좋아진 점이 별로 없다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합니다.


서울의 뉴타운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으로 재임할 당시 추진된 사업으로 2008년 서울 곳곳에서 재개발 광풍이 불게 하였던 사업입니다. 서울에서만 22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하니, 서울 곳곳이 공사판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곳곳의 도시를 재개발하고,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토지를 도배하다보니 도시가 뜨겁기만 합니다. 아침부터 하루가 힘들겠구나 예상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전부터 온 몸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날은 덥고 땀은 흐르지만 순례 참가자들의 마음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부미경님은 “용산 참사를 보고 무기력해졌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보는 무기력을 넘어 황망하고 안타까웠다”면서, “얼마 전 오체투지 순례 성직자분들의 용산참사에 대한 따끔한 지적에 많은 공감을 했고 가르침이 되었다. 더불어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자 참여했다”고 합니다.

부 선생님은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남의 삶도 무관심 하다. 저 자신부터 반성해야 한다. 살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다는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배려가 너무 상실된 우리 자신이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순례가 세상을 전부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실마리를 줄 것이고 개개인의 변화도 심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뉴타운 공사현장을 따라 구파발역을 지나던 순례단. 낮선 도시 모습이 눈에 익지 않습니다. 전종훈 신부님은 ‘예전에 여기가 이렇지 않았는데...’라며 계속 낮설아 하며 어린 시절 소풍 나온 기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놀라기만 하시더군요.


새로운 아파트 건설현장을 따라 길을 재촉하며 나서는 상황. 오전 순례가 거의 끝날 무렵 드디어 서울과 경기도 경계선에 도착하였습니다. 지난 16일 과천에서 남태령을 넘어 서울로 순례를 시작하였으니, 11일만에 서울 구간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긴박감. 높디 높다란 빌딩과 홍수처럼 밀려드는 자동차 대열에서 감동을 받지 못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살아갑니다. 서울에서는 높은 사람과 빌딩, 자동차만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상 세상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것은 이름 한줄 남기지 않았던 수많은 국민이었습니다. 빌딩 속에 가려져 있지만, 자동차의 대열속에 가져져 있지만 실상 그 속살에는 따스한 가슴으로 세상을 품고 있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를 염원하는 수많은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 따스한 마음이 세상에 온기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통일로를 따라 몸을 낮추며>
높은 세상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희망을 만들고자 하였던 순례단. 이제 서울을 벗어나 통일에 몸을 낮추며 길을 찾습니다. 오전에 오붓하게 출발하였던 순례단 대열도 오후에는 길게 줄이 이어졌습니다.


서울을 벗어났다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공사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더군요. 시간의 역사속에서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자 기억을 품고 있었을 곳에는 폐허가 된 건물 잔재가 남아있고, 순례단을 배웅하는 뒷 모습에도 여전히 아파트 단지만 주인처럼 보입니다.


한껏 달구어진 도로는 순례단의 진행을 더디게 하고, 얼음주머니 가득 채워 머리에 올리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몸을 낮추어 세상을 마주합니다. 갈라진 남과 북이 하나로 통일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1972년 완성된 이곳 통일로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에 이르는 도로로 약 70㎞에 이릅니다.


과거 80년대 이 길에는 남과 북이 대립과 갈등을 넘어 하나의 평화로운 생명공동체가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몸을 던졌던 수많은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가지 남과 북은 부침의 경과가 있었지만 대화와 협력에 기반한 남북관계를 형성해왔습니다. 비록 최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강경책으로 인해 남과 북 사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높지만, 남북은 반드시 소통과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남과 북이 평화 공존에 기반한 소통과 대화 협력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반드시 이겨야 하겠다는 오만한 입장 계속 이어간다면 우리에게는 암울한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결과 반목의 지난한 역사의 반복이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화롭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남북의 모습일 것입니다.


평화의 기운이 우리 삶의 주요한 가치가 되고, 생명의 마음이 확산되기를 바라지만, 통일로를 따라 나선 지역의 상황 역시 서울과 다를지 않더군요.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신도시와 관련하여 불편한 지역민들의 요구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군요. 지역민들의 마음처럼 일들이 평온하게 해결되기를 염원할 뿐입니다.


길에 늘어선 오후 순례길. 이제 휴식시간마다 시원한 물과 나무 그늘이 무엇보다 고마운 시기입니다. 한껏 달구어진 도로의 열기에 몸을 맡기다보면, 지나는 차량이 전해주는 바람의 손길조차 감사하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육교조차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순례 진행팀으로 참여하는 전건호 학생. 현재 미국에 유학중인 대학생입니다. “처음엔 아버지의 권유로 오체투지 자원봉사를 위해 참여했지만, 막상 순례단과 함께 하니 실천적 체험을 하면서 정확한 취지를 이해하고 싶다”고 하시고 “또 제 자신을 발견하고 뭔가 깨달음을 위한 순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합니다. 덧붙여 “오체투지를 해 보니 무척 힘든데 연로하신 성직자들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전건호 학생은 “오체투지가 저에게 좋은 경험과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고 하십니다.


자연의 시간은 사람의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시간은 어느덧 순례단을 목적지에 다다르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한 번의 움추림과 한 번의 곧추세움으로 세상길을 열어가고 그 속에서 우주적 삶을 보여주는 한 마리 자벌레처럼, 나를 낮추어 세상을 바로 보고 우리 시대가 잊어버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순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순례길은 삼송역을 지나 삼송초등학교 인근에서 무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지혜성(도선사) / 김세열(서울) / 이학춘(안산) / 부미경(서울) / 이덕희(서울) / 동재 스님 외 30명(화계사 불교대학원) 등이 함께 하였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5월 28일(목) : 삼송초교 교차로 - 벽제교 - 고양시 대자동 1번국도 통일로 휴게소
● 5월 29일(금) : 고양시 대자동 1번국도 통일로 휴게소 - 벽제중 - 내유동 세화 휴게소 인근
● 5월 30일(토) : 고양시 내유동 세화 휴게소 인근 - 내유교회 - 조리읍 송촌 토파즈 아파트 앞
● 5월 31일(일) : 조리읍 송촌 토파즈 아파트 앞 - 신안아파트 - 파주시 PK 마을 앞
● 6월 01일(월) : 파주시 PK 마을 앞 - 영태 오리마을 회관 - 월농면 농협 인근
● 6월 02일(화) : 휴식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이병훈, 진관사, 화계사, 신근아(마중물), 경기 2113 화물차량, 부미경(서울), 고양동 성당 등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5. 27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